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이사르의 내전 (문단 편집) === 폼페이우스의 병력 === 폼페이우스는 1년 동안 그리스에 머물면서 카이사르와 싸울 군수물자와 병력을 모집하였다. 그는 자신의 옛 고참병으로 구성된 1개 군단과 역시 키케로 휘하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었던 고참병으로 1개 군단을 편성하고 전해의 집정관이었던 렌툴루스[* 앞서 카이사르를 원로원 회의에서 맹렬히 성토하던 그 집정관이었다.] 휘하에서 군적을 올린 바 있었던 2개 군단에 추가로 이탈리아에서 소집한 5개 군단까지 총 9개 군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그의 장인인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시리아]]에서 2개 군단을 이끌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밖에 보조병으론 크레타 궁병 3천, 투석병 6백, 기병 7천이 있었다. 이 기병들은 폼페이우스가 동방 원정 시 인연을 맺은 바 있었던 동방 각국의 왕들이 보낸 기병들이었고 그중 자신의 노예와 목동에서 8백의 기병을 편성해 보충하였다. 이렇듯 폼페이우스의 군대는 고참병으로 구성된 2개 군단을 제외하고는 모든 군단이 군사 경험이 없었던 반면 카이사르군은 3개 군단을 제외한 나머지 9개 군단은 갈리아 전쟁에서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마침내 갈리아 제패까지 마무리 지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병력들이었다. 또한 폼페이우스의 기병들 역시 정예와 거리가 먼 자들로써 주로 왕국의 귀족들로 구성된 반면 카이사르의 기병은 즉 갈리아 전쟁에서 눈부신 용맹을 발휘한 게르만 기병과 갈리아의 모든 전쟁에 참여한 3천의 기병에서 선발된[* [[내전기(율리우스 카이사르)|내전기]] 1권 39장에 언급되어 있다.] 기병들이었으므로 개개인의 전투력에서는 훨씬 앞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